4.
세 시간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아서는 눈 앞의 광경에 넋을 놓고 있었다.
분수가 자리잡은 원형의 정원과 진입로,
그 너머에 놓인 작은 백악관같은 저택.
그 뒤로는 얕은 둔덕 위로 연구소 건물처럼 보이는 것이
세 채 정도가 자리잡고 있었다.
몇 시간 전만 해도
네바다 사막의 흙모래 속을 뒹굴던 게 맞는가 하는
비현실감에 사로잡힐 지경이었다.
비현실적인 건 단지 그것만이 아니었다.
에어울프를 착륙시켜둔 격납고는
땅이 좌우로 열려지고, 그 밑의 지하에 큼지막하게 설치되어 있었다.
이 정도의 규모와 재력이 있어보이는 집단이라니.
이 법질서 재단이란 곳이 뭐하는 곳인가를
묻고 싶은 아서의 마음을 대강 눈치채고 호크는 말했다.
“일단은 푹 쉬는게 먼저야. 그 이후가 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묻지 말게. 갑작스런 일일텐데 고생했네.”
호크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저택의 큰 문이 덜컥 열렸고, 두 사람이 모습을 나타냈다.
수북한 곱슬머리와 훤칠한 키를 가진 정장차림의 한 노인,
그리고 기품있어 보이는 또 다른 노인 여성.
“헤이, 버디!!!! 진짜 오랜만이야!”
오랜만에 정말 반가운 친구라도 만나는 것 같은 그의 태도와 달리,
호크의 표정이 묘하게 씁쓸한 느낌을 주는 것에 아서는 의아해졌다.
“그래. 정말 오랜만이군.”
“하하핫! 여전히 붙임성 없어보이는구만 그래! 그런데 이 분은?”
“에어울프를 같이 몰고 왔네. 이 사람이 조종했지. 이름은 아서 한.”
“오, 만나서 반갑습니다. 미스터 한.”
노인은 아서에게도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것마냥
스스럼없이 웃음짓고 악수를 청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난 법질서 재단의 이사장 마이클 나이트라고 합니다. 이 쪽은 내 아내 보니.”
아서를 잠시 응접실에 대기시키고,
세 사람은 반가움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정말 오랜만이에요, 호크. 별로 변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런가요. 난 내가 많이 늙었다고 생각해요, 보니.”
“그런 무뚝뚝한 면도 여전하군요.”
어깨를 으쓱하는 호크를 보며 보니는 미소를 지었다.
“이런이런. 질투가 나는데? 이 친구도 한 때 꽤나 여자를 홀리는데 선수였단 걸 아니까 더더욱.”
“그 분야에선 당신보다 더 뛰어난 사람은 없을거라 생각하는데요?”
“그래도 결국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보니 당신뿐이야. 알잖아.”
능글맞은 웃음과 함께
낯간지러운 대사를 치는
마이클을 보며 호크는 한숨을 쉬었다.
원래부터 마이클이 그런 가볍고 유쾌한 사람이라는 건 알았지만,
정말 미묘하게, 서로 맞지 않는 놈이구나 하는 것만 다시 확인하는 심정.
“자, 당신에겐 그 아서 한이라는 친구의 안내를 좀 부탁하지. 나는 에어울프 때문에 호크와 좀 얘길 나눠야겠어.”
마이클이 보니의 엉덩이를 토닥이고, 보니가 짐짓 샐쭉한 표정으로 나가는 광경.
호크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얼마 후,
호크로부터 에어울프가 이동하게 된 자초지종을 모두 들은 뒤,
마이클은 큰 책상 맡에서 사무용 의자에 등을 기댔다.
“에어울프의 정보가 노출되었다니. 큰일이군. 하지만 이제껏 숨겨온 것도 기적에 가깝지.”
호크는 찻잔을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그 기적이 오래 갔으면 좋았을텐데.”
“이젠 벌어진 일이니 어쩌겠어. 일단은 여기서 좀 쉬게. 에어울프는 어떻게 해야 할 지 좀 알아봐야 할 시간도 필요하고. 그런데.....”
마이클이 뭔가 말끝을 흐리며 호크를 바라봤고,
그게 뭘 의미하는지를 눈치챈 호크는 다시 차를 홀짝였다.
마치 더 이상의 얘기는 거절하겠다는 듯이.
마이클은 그걸 알면서도 밀어붙이듯 말을 꺼냈다.
“에어울프의 개조는 정말 안할 셈인가?”
호크는 다시 찻잔을 내려놓았다.
“마지막에 봤을 때도 얘기했지만, 지금도 쉽게 말하고 싶지 않아.”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에어울프가 AI를 탑재한다, 키트같이. 그래, 뭐 그것도 좋겠지.”
“그래? 그럼 다시 생각해 주는 건가?”
"내키지가 않아. 자네라면 골리앗을 다시 마주하고 싶겠나?”
기대감을 갖던 마이클의 표정이 되려 뜨악해졌다.
키트를 타고 온갖 범죄와 싸우던 때,
정말 처참하게 죽을 뻔한 적이
그 전투차량 골리앗을 탄 가트 나이트와 싸웠을 때였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호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마이클은 알고 있었다.
에어울프의 제작자, 헨리 모펫 박사가 심어놓은 AI코드 몇 줄 때문에
에어울프가 무차별 공격 모드로 오
작동을 일으켰고,
결국 에어울프의 컴퓨터를 초기화하기 위해 성층권까지 올라가
지옥같은 기온과 환경을 이용해 쿨링오프를 시도하다 추락해 죽을뻔했던 그 상황을.
“하지만 버디. 고려해봐야 할 두 가지 지점이 있어.”
“뭔가?”
“첫번째는 키트가 나와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인격이라 부를 수 있는 지점까지 도달했다는 거야. 지금에서야 AI에 대한 관심과 도전이 많은 상황이지만 이미 키트는 다른 곳의 연구들 따위와는 비교가 불가능한 완성형이지. 자네가 걱정하는 그런 행동을 하지는 않을 거라는 보장이 있어. 두번째는.....”
“두번째는?”
“자네도 이젠 오래 살지 못할 거라는 점이야. 나도 그렇고.”
마이클의 말은 확실히 일리있는 말이었고,
호크도 생각하지 못한 바는 아니었다.
자신이 죽어서 에어울프가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게 됐을 때,
어느 누군가에게 넘겨져 어떻게 사용될지에 대한 보장은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것.
단순히 그것만의 문제가 아니라,
보조관제석에서의 역할을 대체할 존재도 있어야 한다는 필요는
항상 있어왔던 문제였다.
하지만 호크는 확신하고 있었다.
그 누군가가 이미 나타났고,
에어울프를 넘기기에는 적당한 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이 가진 확신이 맞다면, 결정도 손쉬운 일일 것이었다.
“나와 같이 온, 그 아서 한이라는 사람을 조사해봐주게.”
“뭐, 이미 키트가 하고 있을 거야.”
호크는 마이클을 바라보며, 짧은 한숨을 짓고는 말했다.
“그가 적절한 사람이라면, 나도 다시 고려해봐야 되겠지.”
마이클의 입가에 미소를 담자, 호크도 같이 미소를 지었다.
“역시 그 의자는 데번 마일즈가 더 어울렸어.”
“아니, 근데 이 친구가?”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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